오래된 빚을 두고 채권추심 연락이 오면 소멸시효부터 떠올린다. 몇 년 지나면 없어진다는 말은 다들 들어 봤다. 그런데 소멸시효 기간만 지났다고 끝나지 않는다.
소멸시효는 지나기만 해서는 효력이 없고 당사자가 주장해야 한다. 더 큰 함정은 반대쪽에 있다. 조금이라도 갚으면 지난 기간이 통째로 없던 것이 되고 처음부터 다시 센다.
추심업체가 「일부만이라도 입금하시라」고 권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민법 제168조 제3호의 「승인」에 해당해서, 조금이라도 갚으면 5년을 기다린 사람도 다시 5년을 세야 한다.
빚을 줄이려고 보낸 돈이 기간을 되돌려 놓는다. 채무 소멸시효에서는 조금 갚는 것이 손해가 되는 구간이 있다.
소멸시효는 지나기만 해선 안 되고 주장해야 끝난다
빚 종류별로 기간이 1년에서 10년까지 갈린다
내 빚을 몇 년짜리로 볼지부터 정해야 한다. 채무 소멸시효 기간은 종류마다 근거 조문이 다르다.
| 빚 종류 | 기간 | 근거 |
|---|---|---|
| 카드 대금·은행 대출·캐피털 | 5년 | 상법 제64조(상행위로 인한 채권) |
| 물품 대금 | 3년 | 민법 제163조 제6호 |
| 병원비 | 3년 | 민법 제163조 제2호 |
| 공사대금 | 3년 | 민법 제163조 제3호 |
| 통신요금 | 3년 | 민법 제163조 제1호 해석 |
| 음식값·숙박료 | 1년 | 민법 제164조 제1호 |
| 학원비 | 1년 | 민법 제164조 제4호 |
| 개인 간 빌려준 돈 | 10년 | 민법 제162조 제1항 |
통신요금은 조문에 「통신」이라는 말이 없다. 제163조 제1호의 「사용료 기타 1년 이내의 기간으로 정한 금전」에 해당한다고 보아 3년으로 다룬다. 조문에 이름이 적힌 것과 해석으로 정해지는 것이 섞여 있다.
기간이 갈리는 기준은 빌린 곳이 아니라 채권의 성격이다. 같은 카드사라도 카드 대금은 상행위라 5년이고, 회사가 물건을 팔고 남은 외상은 3년짜리가 된다.
기산점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센다
기간을 알아도 시작점을 모르면 계산이 안 된다. 민법 제166조 제1항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정한다.
돈을 갚기로 한 날이 지나 채권자가 청구할 수 있게 된 때가 그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돈을 쓴 날도, 추심 연락을 받은 날도 아니다.
| 상황 | 기산점 |
|---|---|
| 정해진 변제기가 있는 대출 | 변제기가 지나 청구할 수 있게 된 때 |
| 기한의 이익을 잃은 대출 | 기한이익상실로 전액을 청구할 수 있게 된 때 |
| 월 단위로 내는 요금 | 각 달의 납부기한이 지난 때부터 따로 센다 |
월 단위 요금은 한 덩어리가 아니다. 달마다 기산점이 다르니 어떤 달치는 완성되고 어떤 달치는 남아 있을 수 있다. 통신요금이나 관리비에서 자주 갈리는 지점이다.

소멸시효 완성은 자동이 아니라 주장해야 한다
기간이 다 지나도 법원이 알아서 빼 주지 않는다.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해야 그때 효력이 생긴다.
이 구조 때문에 추심 소송이 성립한다. 시효가 지난 채권으로 소를 제기해도, 채무자가 대응하지 않으면 그대로 판결이 난다.
- 기간 경과만으로는 채권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 소송이나 지급명령이 오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해야 한다
- 주장하지 않고 넘어가면 시효가 지난 빚도 판결로 확정된다
- 확정되면 그때부터 다시 10년이다
그래서 추심 연락을 받은 뒤의 행동이 기간 자체보다 중요해진다. 무엇이 기간을 되돌리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소멸시효 중단사유는 청구·압류·승인 세 가지다
민법 제168조는 중단사유를 세 가지로 정해 두었다. 이 중 하나라도 생기면 기간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초기화된다.
| 중단사유 | 누가 만드나 | 예 |
|---|---|---|
| 1. 청구 | 채권자 | 소 제기, 지급명령 신청 |
| 2. 압류·가압류·가처분 | 채권자 | 급여·예금 압류 |
| 3. 승인 | 채무자 본인 | 일부 변제, 채무확인서 서명 |
제178조 제1항은 중단되면 「중단까지에 경과한 시효기간은 이를 산입하지 아니하고 중단사유가 종료한 때로부터 새로이 진행한다」고 정한다. 4년 11개월을 기다렸어도 승인이 한 번 있으면 다시 5년이다.
앞의 둘은 채권자가 하는 일이라 막을 수 없다. 문제는 세 번째다. 승인은 채무자가 스스로 만든다.
추심업체가 1만원을 받으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승인은 「갚겠다」는 의사를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다. 금액이 크든 작든 상관이 없다.
| 추심 쪽 제안 | 겉으로 보이는 것 | 실제 효과 |
|---|---|---|
| 「일부만 입금하세요」 | 부담을 덜어 주는 제안 | 일부 변제 = 승인 |
| 「채무확인서에 서명만」 | 확인 절차 | 채무 인정 = 승인 |
| 「분할로 나눠 드릴게요」 | 상환 편의 | 분할상환 약정 = 승인 |
| 「계좌만 등록해 두세요」 | 준비 절차 | 변제 의사 표시로 다툼 소지 |
1만원만 갚으면 5년이 처음부터 다시 돈다. 채권추심 쪽에서는 소송 비용을 들이지 않고 기간을 되살리는 가장 싼 방법이고, 보낸 쪽에는 그만큼이 손해다.
시효가 이미 완성된 뒤에 갚는 것도 위험하다. 제184조 제1항은 소멸시효의 이익을 「미리」 포기하지 못한다고만 정한다. 완성된 뒤의 포기는 막지 않는다는 뜻이라, 완성 뒤 변제가 시효이익 포기로 다뤄질 수 있다.
완성 전에 하면 안 되는 네 가지
추심 연락이 왔을 때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다.
- 금액에 상관없이 입금하지 않는다 — 1만원도 승인이 된다
- 채무확인서·각서에 서명하지 않는다 — 서류 이름이 무엇이든 채무를 인정하는 내용이면 승인이다
- 분할상환 약정을 맺지 않는다 — 갚을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승인이다
- 자동이체를 다시 걸지 않는다 — 등록만 해도 변제 의사로 읽힐 수 있다
전화로 「갚을 생각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녹취가 남으면 승인 여부를 두고 다툼이 생긴다. 시효 문제를 다투는 중이라면 말보다 서면으로 대응하는 편이 안전하다.
지급명령이 오면 2주 안에 이의신청해야 한다
채권추심이 소송으로 넘어가면 대개 지급명령부터 온다. 지급명령 이의신청 기간을 놓치면 되돌리기 어렵다.
민사소송법 제470조 제1항은 「채무자가 지급명령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한 때에는 지급명령은 그 범위안에서 효력을 잃는다」고 정한다. 제2항은 이 2주를 불변기간으로 못박았다.
| 대응 | 결과 |
|---|---|
| 2주 안에 이의신청 | 지급명령이 효력을 잃고 소송으로 넘어간다 |
| 2주를 넘김 | 확정된다. 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긴다 |
| 확정 후 | 민법 제165조에 따라 소멸시효가 10년이 된다 |
3년짜리 통신요금도 이 단계를 지나면 10년짜리가 된다. 짧은 빚을 가장 긴 빚으로 바꿔 놓는 셈이라, 봉투를 뜯지 않고 두는 것이 가장 나쁜 선택이다.
판결로 확정되면 3년짜리도 10년이 된다
민법 제165조 제1항은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은 단기의 소멸시효에 해당한 것이라도 그 소멸시효는 10년으로 한다」고 정한다. 제2항은 파산절차로 확정된 채권, 재판상 화해와 조정까지 같게 본다.
채권자가 시효 완성 직전에 소를 제기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한 번 판결을 받아 두면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나고, 10년이 다 되어 갈 때 다시 소를 제기해 또 10년을 얻을 수 있다.
- 중단사유가 없으면 기간이 지나면서 시효가 완성된다
- 승인이 있으면 같은 기간이 처음부터 다시 돈다
- 판결로 확정되면 기간 자체가 10년으로 바뀐다
- 제165조 제3항에 따라 판결 당시 변제기가 오지 않은 채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시효가 끝난 채권을 계속 추심하면 채권추심법에 걸린다
시효가 완성됐는데도 추심 연락이 계속 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쓸 수 있는 조문이 따로 있다.
채권추심법 제11조 제1호는 채권추심자가 「무효이거나 존재하지 아니한 채권을 추심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같은 조 제4호는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데 진행 중이라고 거짓으로 표시하는 것도 막는다.
-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했는데도 같은 채권으로 계속 연락이 오는 경우
- 소송이나 압류가 진행 중이라고 하면서 사건번호를 대지 못하는 경우
- 법원이나 검찰로 오인하게 하는 표지를 쓰는 경우(제11조 제2호)
- 추심 권한이 있다고 하면서 채권 양수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제11조 제3호)
이런 연락은 녹취와 문자를 남겨 둔다. 금융감독원 1332로 신고할 때 근거가 되고, 모르고 응했을 때의 손해를 막아 준다.
시효가 끝나도 신용점수는 NICE·KCB에서 따로 움직인다
소멸시효 완성과 신용점수는 같은 제도가 아니다. 채권이 소멸해도 신용정보에 남은 연체 기록은 별도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점수에 반영되는 시점도 따로 정해진다.
NICE평가정보와 KCB는 각각 자기 평가 모형으로 점수를 매긴다. 시효 완성 사실이 두 곳에 같은 속도로 반영된다고 볼 근거가 없으므로, 점수를 보려면 두 곳을 각각 조회해야 한다.
빚이 사라지는 문제와 신용점수가 오르는 문제를 하나로 묶으면 판단이 어긋난다. 시효는 갚을 의무를 다루고, 점수는 평가를 다룬다.
지금 내 채권 시효를 확인하는 경로
기산점과 중단 여부는 사실관계라 서류로 확인해야 한다. 아래 순서로 본다.
- 국가법령정보센터 — 민법 제162~165조, 제168조, 제178조, 제184조, 상법 제64조 원문을 직접 읽는다
- NICE지키미·KCB올크레딧 — 연체 기록과 등록 시점을 조회한다. 기산점을 잡는 단서가 된다
- 대법원 나의사건검색 — 지급명령 이의신청 기한이 남았는지, 내 이름으로 확정된 사건이 있는지 본다
- 신용회복위원회 1600-5500 — 채무조정과 시효 문제를 함께 상담한다
- 금융감독원 파인·1332 — 내 채권이 어느 회사로 넘어갔는지 확인하고, 부당한 추심은 신고한다
소멸시효는 오래된 빚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제도가 아니라 지켜야 끝나는 제도다.
기간이 다 찼는지보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갚으면 생기는 승인이 한 번도 없었는지가 먼저다. 개별 사건의 시효 완성 여부는 기산점과 중단 사실에 따라 달라지므로, 다툼이 생겼다면 위 창구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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